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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8) 소녀상을 세우는 시민 김금성

입력 : 2018-09-28 09:13:29
수정 : 2018-09-28 09:20:28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8) 소녀상을 세우는 시민 김금성

 

▲ 길원옥할머니께 파주소녀상 뱃지를 달아드리고 인사하는 김금성님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아니라니까. 정말 아니야.” 몇 번이고 피하고, 도망갔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난 아니라니까.”

그렇게 그녀는 인터뷰를 피했다.

 

파주행복장터가 이끈 소녀상운동

김금성. 56세의 그녀가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은 아주아주 우연이었다.

새마을부녀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된장 담그기를 하는 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된장을 직접 담그고 싶었다. 그래서 파주로컬푸드 직거래 장터 파주행복장터밴드에 가입했다. 이 밴드에서 먹거리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가 파주에서 소녀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대학생들이 소녀상을 지키고, 청소년들이 수요집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금에 참여하고 잊고 있었다.

1월에 출범식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모르니 이제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보훈회관으로 왔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다. 출범식장에서 낯설어서 쭈볏거리고 있던 나를 세월호 리본을 단 여자분이 여기 앉아요라며 친철히 말을 걸어왔다.

앞에서 소녀상을 세우는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 ‘인권의 광복을 얘기하는데, 눈물이 나서 가만히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때 앞쪽 대각선에 있던 남자분도 울고 있었다. 또다시 눈물이 나와 따라 울었다.

 

▲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내부에 있는 추모의 공간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모하며

 

왜 그렇게 아팠는지...

그 후 딸들과 여행을 갔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여행도 못하고, 돌아와서 병원에 입원했었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그러다가, 소녀상 추진모임에서 홍보한다고 해서 참여했다.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몸이 아파왔다. 그래서 나가서 홍보활동을 하고. 뭐라도 도와야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홍보활동에 나가고, 회의에 나가고, 강연에 나가고....그리고 수요집회,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 다니며 배우고 있다.

 

 

 ▲ 처음으로 참여한 수요집회. 2018년 9월 12일. 1352차 집회였다. 벌써 25년이 넘었다

 

▲ 수학여행 코스로 수요집회를 찾은 경남외국어고 학생들

 

수요집회에 참가한 일본고베여자대학교 학생들 




우수행원에서 행복한 엄마가 되다

김금성님은 주택은행에서 15년간 우수 행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했다. 그 때 명예퇴직 제도가 처음으로 생겨서 신청한 것이다. 결혼때부터 맞벌이를 하느라 시골에 맡겨뒀던 6, 3살난 딸을 데려왔는데, 놀이방에 맡긴 아이가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고 자신도 힘들었다. 그래서 명예퇴직을 한 것이다. “퇴직하고 나니 행복을 알겠더라구요. 이 때서야 아이랑 다니면서 행복이란 걸 느껴봤어요. 둘이 버나 혼자 버니 큰 차이가 없었어요.”

김금성씨도 누구나처럼 여러 가지 문제로 속이 편치만은 않았지만, 마음수련으로 마음 편히 지낸다고 했다. 그는 2000년부터 마음수련을 하면서 전국을 돌며 홍보활동도 했고, 홍콩 일본 영국 중국까지도 홍보하러 다니기도 했던 열혈 마음수련맨이었다. 남편과 아이들도 마음수련을 한 가족. 그는 가족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나 활동이 구애받지 않는다면서 알아서 잘 해주는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 살아계실 때 우리가 해결하자.

솔직히 아픈 것을 보면 아프고, 좋은 것을 보면 좋잖아요.”

갈수록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몸이 아파요. 이 아픈 마음을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모두가 좋아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게 돼요.”

김금성님은 올 912일 처음으로 수요집회에 참석했다(1352). 참석한 아이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부끄럽고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더 고민하게 되었다며 돌아가신 시어머니, 친정 어머니 얘기를 했다. 시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도 땄다는 김금성님.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더 해드렸으면 하는 일을 얘기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길원옥 할머니를 느끼는 것 같았다.

원한을 갖고 사는 할머니가 한을 풀도록 도와줘야 해요.”

할머니들 사시는 곳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우리가 해결하자며 공식사과를 받아야 한이 풀릴 것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어머니 그리듯이, 할머니들을 안타까와 하는 마음으로 소녀상 운동을 하는 김금성님. 그는 그저 따뜻한 마음 하나로 세상을 녹이고 있었다.

 

▲ 김서경 김운성 작가 작업실에서 소녀상세움 추진위 회의를 하고 기념 촬영


길원옥 할머니는

 

길원옥 할머니는 1928년에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13세인 1940년부터 만주 하얼빈, 석가장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야 했다. 1998년에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을 했고, 2004년 부터 지금까지 국내.외를 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평화를 위한 인권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201889세인 길원옥 할머니는 윤민석 작곡가의 도움을 받아 올해 음반을 냈다. 어릴 때 가수가 꿈이었던 할머니는 한 많은 대동강을 수록했다.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 세움 파주시민추진위원회는 평양이 고향인 길원옥 할머니를 쌍둥이 소녀상 제막식에 초대하고자 했으나 할머니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답을 받았다. 파주와 북측에 세워질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할머니도 고향 딸을 밟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189월 현재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27명이다. 시간이 없다!

                                                                                                글 사진 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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