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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34> 한강의 기적과 유럽의 선례 사이에서

입력 : 2019-02-21 16:52:56
수정 : 2019-09-05 02:16:35

 

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34> 

     한강의 기적과 유럽의 선례 사이에서

한강의 기적, 그 말 되게 좋아했다. 오죽하면 교과서 글씨에서도 흥분 묻어나는 듯했다. 6·25 전쟁 이후 한국은 빠르게 성장했고 폐허가 됐던 서울은 50년 만에 번듯한 도시로 거듭났다. 국제구호단체들이 사용하는 ‘세계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세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라는 말도 그런 자긍심을 자극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 어딘가에서 큰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다. ARS로. 소중한 기금 모였지만 세계에 도움을 준다는 말 듣기에 전화 한 통으로는 부족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독재정권을 지나며 한국에서는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다. 독립운동가, 참전용사, 민주투사,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난민들도 생겨났다. 일제 지배 아래 핍박 받다가 도망치는 사람들, 전쟁을 피해 북쪽 끝 혹은 남쪽 끝으로 향하는 사람들…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그들도 난민이었다. 독립 운동을 하다 행동 제약을 피하러 만주로 떠나는 독립운동가나 독재자를 비판하다 위협을 느끼고 바다 건너 망명 신청을 하는 민주투사도 난민이었다.

2018년 6월, 500여 명의 난민이 제주도로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에 반응은 극렬했다. 어느 추운 봄, 학살을 피해 만 명 이상의 제주도민이 일본에서 난민 신세 져야했던 것이 겨우 70년 전.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나 알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을 비준했다. 2009년에는 한국만의 난민법이 통과되었는데, 이는 아시아 최초의 독자적 난민법이었다. 2013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0.8%, 세계 평균에는 한참 못 미치더라도 2017년 4.1%에 비하면 나아 보인다. 난민들은 점점 많아지고, 많은 나라들이 그에 발맞추고 있는데 한국은 왜 제자리걸음은커녕 뒷걸음질 치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 난민이 이슈가 된 이후 사람들은 수없이 말했다. “유럽의 선례를 봐라.”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정말 유럽의 선례를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너무 쉽게 ‘안다’ 혹은 ‘보았다’고 느낀다. 내 눈으로 봐야 했다. 본 것을 한 꺼풀 벗겨 생각해볼 필요도 있었다.

독일에 다녀왔다. 내가 본 독일은 난민 때문에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난민을 대거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독일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난민의 수를 제한하자는 제안을 일부나마 수용하기도 하고, 난민수용반대를 내건 극우정당이 득세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굳건하게 퍼져있는 것이 있었다. ‘우리에겐 책임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믿는 시민들의 목소리. 독일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독일은 새로운 전환의 길에 서 있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난민을 배출하는 국가에서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로. 다르지 않은 말임에도 전자는 자부심을, 후자는 거부감을 갖게 되는 이유. 알아보려는 노력 없이 미래의 이웃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이유. 알고 싶지만 모를 수 없어 더 괴로운 이유들. 의문을 가져본다. 나는 왜 그랬나, 나는 왜 그런가.

「파주에서」Teen 청소년  기자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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