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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것, 세상을 밝게하는 소중한 일

입력 : 2015-01-12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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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퀸터 벨치크가 세월호 이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우리에게 “아이들이 가만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살기위해 노력하다 죽는 것과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은 정말 다르다. “내 말 들어라” “가만히 있어라”는 명령과 과잉보호에 익숙해져서라고 진단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것이 우리가 빠진 함정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



물론 이 참사의 주범은 우리가 아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이해해서도 안되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지 못한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는 일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세월호 안에 있다. 우리 안에서 익숙해져 있는 명령, 순응, 굴복, 회피, 반목, 폭력, 무책임 등등. 왜 우리는 이런 세상을 만들게 된 것일까? 나는 퀸터 벨치크씨의 말을 편해문 선생님에게서 전해들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물론, 네가 만든 것도, 내가 만든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만든 것일까? 나를 뺀 세상 권력이? 정치인들이? 이윤 추구에 목을 맨 기업가들이?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도 나쁜 것 



우리 안에는 ‘남을 위해 참는다’는 생각, 또는 ‘그냥 나만 피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이 남을 위해 참는다는 생각이 오늘의 위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 내가 조금만 참거나, 내가 조금만 희생하거나, 내가 조금만 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모여 커다란 ‘도피’라는 벽을 쌓았던 것은 아닐까?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남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낫지만 오십보 백보입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 끼치는 것은 가장 나쁜 것에 속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쁜 것에 속합니다.” 법륜스님의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도 나쁜 것이다.



 



‘위임’과 ‘위탁’에도 책임이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한다. 자신의 삶, 삶의 조건인 사회 구조, 법, 정치, 먹고 사는 일 모두 우리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는 그 ‘위임’과, ‘위탁’, ‘대의 민주주의’에 대해 시민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그저 권력이나 정치에 욕하는 것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안되는 세상이다. 



내가 나를 잊고 일에 빠져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돈벌어야한다는 강박, 아이만 잘 키워야한다는 생각에 굳어있다면 ‘도피’라는 벽안에 자신을 가두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된다. 자신은 희생하고, 아이들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해 무책임해지는 것이다. 



이제 내가 나를 돌봐야한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한다. 하루 하루의 삶에서 기쁨을 찾는 나 이어야 했다. 



 



나를 사랑하는 것,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강력한 유산



자신을 돌볼 줄 알 때, 행복해지고, 그럴때 세상을 여유롭게 사랑스럽게 책임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세계관이 바로 아이들에게 유전된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돌보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계관을 다듬는 일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운다하지 않던가?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나요?”라고. 왜냐면 그것이 세상을 밝게 하는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일을 열어갈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강력한 유산이기 때문에. 



 



임현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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