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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자의 이모저모 <3> 엄마가 금반지를 건네주다

입력 : 2020-06-05 11:14:28
수정 : 0000-00-00 00:00:00

최순자의 이모저모 <3> 엄마가 금반지를 건네주다

 

 

어버이날 엄마랑 점심 약속을 했다. 휴가를 낸 남편도 함께 갔다.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니, 엄마는 벌써 문밖에 나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어 답답해할 것 같아 바람도 쐬어 드릴 겸, 대부도로 엄마가 좋아하는 회를 먹으러 갔다.

 

차를 탄 엄마는 잠시 후 나에게 이거 받아라.” 하며 금반지를 건넨다. 5돈이라고 한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금반지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주겠다고 했었다. 그날이 온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시골에 혼자 살다가 10년 전에 자식들이 사는 곳 가까이 이사를 왔다. 이사 와서 그때 22만 원을 주고 장만했는데, 지금은 한 돈에 25만 원 정도 하니, 아마 백만 원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반지를 받고 나서 내가 엄마 왜 나에게 줘?”라고 하자, “엄마들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다.”라고 한다. 딸자식에게 당신의 특별한 것을 물려주고 싶다는 의미이리라.

 

엄마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만날 때마다 야위어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날도 등이 새우처럼 굽어 있다. 엄마는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나 보다. 반지를 받을 때는 그냥 덤덤히 받아뒀는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왈칵해진다.

 

엄마는 변하지 않는 금으로 된 반지를 특별하게 생각한 듯하다. 반지를 건네며, “자식들이 많아서 돈 모으기가 힘들더라.”고 했다. 엄마는 곤란한 생활 가운데서도 손수 장만해서 당신 손에 끼고 지내시다 딸자식에게 물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금반지와는 비교가 안 될 큰 사랑을 평생 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자식 사랑은 차마 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부족한 내 글솜씨가 오히려 엄마의 그 사랑을 퇴색시킬까 봐 두렵다.

 

 

 

먹을 게 넉넉하지 않은 시절, 6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는 20여 길을 마다하고 걸어서 게와 맛을 잡아 와 반찬거리를 만들었다. 소작농 벼농사 외에 목돈을 만들 수 있다며 누에 기르기, 담배와 수박 등 손이 많이 가는 특용작물도 했다.

 

일을 하다가 밤을 새우다시피하는 엄마의 모습도 몇 번 봤다. 그로 인해 허리뼈가 녹아 내려앉았으나 자식들 앞에서는 아프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들 때는 말없이 자리에 눕는다.

 

남편은 나에게 엄마가 반지에 의미를 부여해서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서 보관하라고 한다. 나는 자식을 위해 평생 일한 엄마 손에 낀,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엄마를 기억하려 한다. 반지는 내가 매일 집을 나오고 들어갈 때 볼 수 있는 곳에 놓여있다.

 

최순자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원장/ 대학강의
         [아이가 보내는 신호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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