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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06] 회문시(回文詩)

입력 : 2019-10-11 06:59:05
수정 : 2019-11-18 06:47:24

 

이해와 오해 [106]

회문시(回文詩)

저술가 박종일

 

 

 

 

가을입니다.

재미있는 중국 시 한편 소개합니다. 읽고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枯眼望遙山隔水, 往來曾見幾心知.

壺空怕酌一杯酒, 筆下難成和韻詩.

途路陽人離別久, 訊音無雁寄廻遲.

孤燈夜守長寥寂, 夫憶妻兮父憶兒.

거칠기는 하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과 강이 길을 막아 하염없이 바라보니 오고가기 쉽지 않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주전자가 비었으니 술잔을 채울 수 없고 붓을 들어 시를 쓰려 해도 운율을 찾지 못한다.

길 떠난 그대 헤어진 지 오랜데 소식 전해줄 기러기는 이리도 늦다.

외롭고 긴 밤을 등 하나 벗하며 남편은 아내를, 아비는 아이를 그리워한다.“

 

한자란 문자 체계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묘미입니다만, 이 시를 (아래처럼) 완전히 거꾸로 읽어도 시가 됩니다.

兒憶父兮妻憶夫, 寂寥長守夜燈孤.

遲廻寄雁無音訊, 久別離人陽路途.

詩韻和成難下筆, 酒杯一酌怕空壺.

知心幾見曾往來, 水隔山遙望眼枯.

역시 거칠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식은 아비를, 지어미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니 쓸쓸한 긴 밤을 지키는 등불이 외롭다.

기러기 늦게 돌아와도 전하는 소식이 없고 떠난 지 오랜 그대 아직도 길 위에 있네.

시를 쓰려 해도 붓을 들기 어렵고 술잔을 채우려 해도 주전자가 비었다.

못 만난 게 얼만지 알 수가 없고, 물과 산으로 끊긴 길 바라보는 눈길이 애처롭다.“

 

이 시는 바로 읽으면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남편과 부모가 소식 전해줄 기러기를 기다리며 한 잔의 술과 한 수의 시를 벗 삼아 긴 밤을 외로이 지키는 모습과 정서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시를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으면 그리움의 주체와 대상이 바뀌면서도 그리움의 상황과 정서는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이 양상사(兩相思)(두 가지 그리움)입니다. 이런 형식의 시를 거꾸로 돌려서 읽어도 시가 된다는 뜻의 회문시라고 합니다.

이 시의 작자는 이 우(李 禺)라는 중국 송()나라 때 인물입니다. 그는 생존 시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으나 누군가 그의 회문시한 편을 기록해 놓아 알렸기에 후세인들이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회문시를 지은 작가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본 소동파, 백거이 같은 대시인도 있고 이름 없는 화류계의 여성이나 양가집 부녀자의 작품도 많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시 한편 읽으실래요?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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