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를 가다 - ‘난잎으로 칼을 얻다’

입력 : 2016-09-29 14:41:00
수정 : 0000-00-00 00:00:00

‘난잎으로 칼을 얻다’

 

<편집자주>

제 8회 DMZ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지난 9월 22일부터 29일까지 매가박스 파주이채점과 백석점, 김포 아트홀, 연천 수레올아트홀에서 열렸다. 총 36개국 116편이 출품된 이번 영화제는 ‘평화, 소통, 생명을 주제로 한 아시아의 대표 다큐영화제’로 도약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9월 22일 열린 개막식은 DMZ 내 캠프그리브스 야외 열렸고, 주목할 만한 섹션은 통일에 대한 전망을 내놓은 ‘DMZ 비전’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일본·중국·대만의 작품으로 꾸민 ‘특별기획전’이었다. 이번 DMZ다큐영화제에는 청소년다큐제작워크숍으로 교하도서관팀에서 만든 10편의 작품도 상영되고있다. 매년 9월 우리지역에서 열리는 다큐영화제에서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이중 매가박스 파주이채점에서 열린 ‘난잎으로 칼을 얻다’ 상영후 임경희 감독과 정다훈 주인공의 관객과의 대담을 지면에 싣는다.

 

▲영화 ‘난잎으로 칼을 얻다’ 중 한 장면 캡쳐1

 

시놉시스

평생을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딸 다훈은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눈이 멀어가는 아버지가 학자로서 못다한 『만주순례기』 초고를 대신 완성해달라는. 2015년 겨울, 다훈은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들고, 복잡한 심정으로 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떠난다. 여행 안에서 다훈은 아버지 대신 ‘한국독립운동사 복원’을 위한 원고를 완성해가며,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영화 ‘난잎으로 칼을 얻다’ 중 한 장면 캡쳐2

 

감독 임경희

영화는 20년지기 내 친구인 정다훈의 이야기로 부녀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만주집필여행을 담고 있다. 만주를 다니는 부녀의 여행경로와 그들의 학문적 대화의 흐름을 따라, 이념 이전에 순수하게 조국의 광복을 고민했던 독립운동가의 생각들을 쫓으며 현재를 사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평생을 아버지와 갈등해오던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청년과 기성세대와의 대립이 화해될 수 있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영화 ‘난잎으로 칼을 얻다’ 중 한 장면 캡쳐3

 

주인공 정다훈

1984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도시 강릉에서 지내는 행운을 누렸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아버지의 소신에 따라 청소년 시기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떠난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는 1년 휴학 후 중국 전역을 여행했다.

고교 졸업 직후에는 인도를, 서강대학교 2학년 때는 지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했다. 자연스레 자유와 도전, 모험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세계의 역사, 신화, 종교 등에 관심이 많아진 것 역시 여행을 통해 생긴 호기심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의 예일대, 중국의 북경대, 일본의 와세다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만났다.

 

임경희 감독, 주인공 정다훈과의 대화

“우리가 아는 역사가 사실일까 의심 가졌으면”

 

▲메가박스 이채점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감독과 주인공.

 

Q 이 다큐를 찍게된 동기는?

임경희 | “아버지가 만주순례기라는 책을 주셨어”라는 얘기를 듣고, “나도 찍을 수 있어”라고 말했어요. 이분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이런 역사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생각해 볼 계기가 되지 않을까해서 촬영을 했고요. 내년에 국정교과서 발표가 되잖아요. 그 전에 조금더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 역사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역사에 대해 사실일까 의심해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고 만들었습니다.

백두산에 처음 간 것은 2008년 여름이었어요. 애국가에서 나오니 백두산이 가까운 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더라구요. 백두산을 중국돈을 내고,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충격이 컸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평화, 통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런데, 그때 당시 이런 얘기만으로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읽혀지더라구요. 왜 우리들 안에서도 금기시 되었을까? 이 문제가 사회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책으로 출간된 평화무임승차자의 80일

 

Q. 다큐 내용이 [평화무임승차자의 80일]이란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소개한다면?

정다훈 | 뺀 사람이 6, 7명이 있어요. 제가 직접 찾아가지 않은 길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어려웠고요, 제가 볼 때 의미있는 사람으로 좁혀진 것이 5명이었어요. 그중 4명은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김산과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를 말하고 싶어요.

김산이 책의 주제를 잘 말한다고 생각했기에 선정했어요. 남북 모두에게서 배반당한 님웨일즈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을 것예요. 이제는 혁명열사로 중국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만. 한국에서도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일본첩자라고 암살당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파가 아니어서 외면당했어요. 3국 모두에서 배반당했다는 것을 돌아보고 싶었어요. 님웨일즈의 [아리랑]이 역사서는 아니어서, 김산평전을 참고하였어요. 김산이 이동한 모든 전역을 다 가지 못해서 안타까와요.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는 대한민국 최초의 당, 한인사회당이 1918년 창설되었는데, 중국공산당보다 3년 앞서, 창당에 사회주의의 모든 이론적인 배경을 만드신 분이셨어요. 32세에 돌아가셨는데, 러시아혁명이 한국의 독립을 만들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으로 운동을 하셨다. 여성이었기에 더 마음이 다가왔어요. 만나보고 싶어 최소한 일했던 지역만이라도 가보려 러시아에 갔었어요. 영상은 없고, 책에 사진으로 남았지요.

 

Q 영화만들면서 힘들었는 것은?

임경희 |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희끼리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재단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면서 사람사이의 관계와 갈등을 푸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느끼게 되었어요. 역사에 대해 동의가 되지 않았으므로, 마치 독립운동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어요.

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을 뿐인데. 뭔가 설득해야하고 싸워야한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임경희 감독

 

Q. 책을 만들면서...

정다훈 | 지금이 독립운동가들이 원하는 현실이 아닐것이라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고요. 역사는 ‘끊임없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고교때 배웠는데, 그 앞에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실상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사람의 가치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그렇다면 과거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평가하는가에 따라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거거든요. 미래는 기억을 하려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독립운동중이라고 생각합니다.

 

Q. 노선간 갈등

정다훈 | 핵심은 다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도 좌쪽이든 우쪽이든 통합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이 무너진 것이 가슴 아픈데요.

다르면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무엇이 다른가를 애기해보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구도 자체가 안타깝다. 다름을 인정하려고 가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은 경직성이 덜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보다 여행을 더 권하고 싶어요. 자율학기제도 있고 하니, 청소년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유적지를 많이들 갔으면 좋겠어요.

 

임경희 | 그 당시의 노선갈등, 사회주의자로 제외된 것에 대해 계속 알아보았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실패한 것에 대해, 우리 역사는 그것을 덮기에 급급했기에 교훈을 얻고 바꾸자는 가지 않고.... 덮고 넘어가고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시에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조국의 독립 하나만을 애썼을 텐데 방법과 노선이 다른 것 뿐이었을 텐데.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상황이든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 부분은 편집에서 잘려서….

 

Q. 용정우물가에서 흘린 정인화교수의 눈물은 무슨 뜻인지?

임경희 | 아버지란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와 동일시하는 것이 있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한다. 전공교수로 살지 못하고, 교양교수로 20년을 보낸 것, 시골에서 소신껏 주장하다 외로왔던 것 때문에 울지 않았을까한다. 사실 독립운동가였을 수도 있고.

 

정다훈 | 63년간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인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한다. 아버님이 너무 앞서 나가셨던 것 같다. 학생들도 주변분들도 이해하지 못해서 외로왔을 것이다. 33년 기른 딸이 이제는 내 말을 이해하는구나 하고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Q. 이후 계획은?

임경희 | 개봉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힘이 많이 드는 일어서. 순조롭게 된다면 내년 상반기에 개봉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

 

정다훈 | 지금 학생들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말하고 토론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

 

 

 

글·사진 임현주 기자

 

 

 

#49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