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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⑬ 6.10민주항쟁, 그 때 난 전투경찰이었다.

입력 : 2017-06-15 23:58:00
수정 : 0000-00-00 00:00:00

 
6.10민주항쟁, 그 때 난 전투경찰이었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호헌철폐! 그날의 함성이 들려온다. 버스에서도 창을 열고 구호를 외쳤다. 온나라가 땀범벅이 되고 최루탄이 난무했다.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민주주의를 지켰다. 20일도 버티지 못한 군사 정권은 거짓 항복을 했다. 모두가 환호했다. 그때 난 이땅 민주주의의 걸림돌 이었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난 그때 전투경찰이었다. 그날이후 부채의식이 생겼다.

 

86년 2월에 군에 입대했고 30개월 군생활 해야 했으므로 한 가운데쯤 작대기 세개를 막 달았을거 같다. 원래 우리 부대는 유성의 대덕 연구단지를 경계 근무하는 시골 부대였다. 시국이 시끄러울때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을지문덕 모자와 대나무 갑옷을 입고 군화발로 땅을 차고 사과탄과 최루탄으로 무장해 시민들과 대학생들과 괴롭혔다. 86 아시안 게임때는 수원으로 한달간 파견나가 민정당사를 지키기도 했다.


▲ 6·10민주항쟁 전투경찰의 모습

6월9일 짐을 싸서 서울로 왔다. 서울역 앞의 남대문 경찰서 강당이 숙소가 되었다. 10일 힐튼호톌 앞이 우리의 작전 지역. 그날은 아무일없이 지나갔다. 시청앞은 난리도 아니었지만... 우린 짐을 쌌고 다시 부대로 복귀해 짐을 풀었다. 청소를 하고 잠이들자마자 다급한 전화통신문을 받는다. 다시짐을꾸려 서울로 왔다. 그날부터 서울역 미도파 시청 남대문시장 연세대가 우리 근무지였다. 최루탄에 밥을 비벼먹어야 했다. 수포가 생기고 포위를 당해 무장해제도 당했다. 내친구는 의경, 그때 을지문덕 모자가 깨지는 큰 부상을 입기도했다. 그렇게 맵고 쓰라린 6월항쟁의 날이었다.


▲ 전투경찰에게 어머니들이 장미꽃을 주고 있다(사진 한겨레신문)

 

전역을하고 학교에 복학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끝없이 이어졌다. 노사모가되고 민주수호! 탄핵무효를 외쳤다.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미선이효순이를 살려내라! 과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박근혜를 구속하라! 까지 부채의식 부채의식. 아버지는 그때 뭘 하셨나요? 자식들에게 떳떳해 지기위해 광장에서 맨주먹으로 허공을 향해 목소리 하나 보탰다.

그렇게 30년이 훌쩍 지났다. 하늘도 그 슬픈 사연을 아는지 새벽에는 비가 내린다. 모기는 이틀째 새벽4시에 공격을 한다. 조그마한 녀석에게 공격 당하니 더 얄밉다. 일찍 일하러 가라는 계시인가? 오늘은 6.10 항쟁 30년을 기리며 밭에 오신 분들께 막걸리나 한사발씩 따라 드려야겠다. 그날 흘린 피와 땀으로 이렇게 살고 있으니깐. 아직 갈길이 멀지만 호시우행의 발걸음으로 적폐청산 하고 더불어 함께 사람사는세상 만들어 가자.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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