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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6)  시험에 들게 하는 시험

입력 : 2020-09-04 06:05:09
수정 : 2020-09-04 06:38:24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6)          

시험에 들게 하는 시험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라는 보기가 나와 있고 보기의 노래 중 작년에 간 제비는 어떤 뜻으로 씌었느냐는 문제와 다시 찾아온다는 무엇이 찾아온다는 뜻이냐는 두 문제였다. 사자택일 문제로서, 정답은 하나씩 작년에 간 제비는 빼앗긴 조국, 무엇이 찾아오느냐에는 조국의 광복에 각각 O표를 해야 하는 건데 소년은 정답에도 O 표를 하고, ‘제비희망이니 작년 봄의 추억이니 하는 함정에도 O 표를 해서 틀려 있었다.>

 

<“주제넘게 굴지 말아요. 누가 요즘 대학생 보고 애국하는 법 가르쳐 달랄 사람 없으니까, 차라리 도둑놈보고 집 지키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게 낫지. 공부나 제대로 가르칠 생각해요. 조금도 어려울 게 없을 텐데, 교과서나 참고서에 조리(調理)해놓은 걸 그대로 우리 애에게 먹여주는 셈만 치면 될 텐데, 학생이 조리까지 할 생각일랑 말아줘요.”>(*단어 일부 수정)

 

1974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소설 <재수굿>에 나오는 대목으로 국어시험에 두 문제나 틀려 92점 받은 소년의 어머니와 가정교사의 대화 내용 중 일부이다. 이 소설은 원래 졸부들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내용인데, 소설의 골자보다 눈에 띈 것은 시험 얘기였다. 어떤가? 거의 50년이나 지났는데 교사들의 출제 양상이나 시험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가 그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가? 사지선다에서 오지선다로 바뀌고, 좀 더 정교화되긴 했겠지만, 시험이 사고 과정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평가목적보다는 여전히 결과 즉 점수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전혀 변함이 없다.

 

 

시험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평가를 위한 제도이다. 시험은 학습효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다음 수업에 반영하며, 수업의 성과를 측정하여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성적에 반영하는 것이다. 교육과정(curriculum)은 교육철학에서 시작하여 수업내용의 선정과 조직, 수업, 평가라고 하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걸쳐 계획되고 실행되는 것으로 평가 단계에 와서야 완성되고 마무리된다. 따라서 평가는 수업의 목적에 맞아야 하고 선정된 수업의 내용에 적합한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핵심이다. 수업의 목표에서 키우고자 하는 인간의 특성이 반영되어야 한다면 평가에서는 수업의 목표가 어떻게 실현되었는지가 측정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마땅히 재야 할 것을 제대로 재고 있는가 하는 타당성(타당도)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별력이다. 그 이유는 시험의 목적이 평가나 피드백이 아니라, 등수와 서열을 매기는 선발이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은 적합성 또는 적실성이 논쟁의 쟁점이 아니라 늘 공정성이나 신뢰성이 문제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성취 기준성취 수준을 세밀히 규정해서 시험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지만 상대적 서열화, 등급화가 현실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핵심이 아닌 지엽적인 부분에서의 출제나 고난이도의 문제를 써서라도 변별력을 높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결국 시험의 문제이다. 교육철학이 어떻고, 수업의 내용과 방법이 어떻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육문제는 내 아이의 시험 성적이 몇 점이고, 몇 등급인가 그래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가, 토익이나 토플이 몇 점이어서 어떤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본말이 전도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시험제도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시험의 평가 기능을 목적에 맞게 어떻게 개혁하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험중독에 빠진 사회적 병리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혜정은 우리나라 최고 학력이 모인다는 서울대학교에서 1, 2학기 모두 평점 평균 4.0(만점 4.3) 이상인 최우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에서 서울대 학부 교육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아니라 수용적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최고학점을 받기 위해서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 적을 정도로 철저하게 1차 필기를 하고, 수업 후에 이를 구조화하고 도식화하는 2차 필기를 함으로써 수업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학습전략을 쓰고, 대한민국 최고지성인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자기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학생들에게 최고 점수를 부여한다. 학교급별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암기식, 주입식, 수용적 지식교육은 서울대학교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혜정은 한국의 교육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객관식 평가를 넘어, 논술, 구술시험 등의 도입이나,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 하는 문제를 훨씬 뛰어넘어, 찔끔찔끔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개혁이 아니라 고등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IB(국제 바칼로레아)로 시험제도를 바꾸면 교육 전반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대한민국의 시험, 2017>). 우리 현실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본도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세계적인 추세이니 귀 기울여 들어볼만한 말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시험이 주는 부작용 문제이다. 이것은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당장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시험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시험은 나날이 치열해지다 못해 이제 전쟁이다. 학생 개인 간의 전쟁을 넘어, 가족 간의 전쟁, 계층 간의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사회는 시험중독에 빠지고 국민은 모두 시험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은 몇 등급입니까, 라는 질문을 힐끗대는 눈길로 확인받으며 살고 있다. 전교 1등 출신이 훌륭한 의사라는 의사협회의 황당한 광고를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하며 그런 의사들의 진료가 의료행위인지 상행위인지 따져 보지 말고 병원에 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시험은 교육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적, 심리학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김기현과 장근영(<시험인간, 2020>)에 의하면, 한국인은 시험인간이다. 시험인간은 선발과 경쟁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에 적응하는 인간형이다. 개인의 능력은 시험에 의해서 환산되고 사람들은 시험의 명쾌한 환산 능력을 절대 신뢰하며 맹신한다. 시험중독에 빠지게 되면서 우리는 첫째, 엄청난 매몰 비용, 둘째, 편협한 터널 비전, 셋째, 경직된 집단사고의 값을 대가로 치르게 된다. 매몰 비용이란 시험에 쏟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말한다. 이 때문에 팽창한 사교육비로 인하여 가정경제는 궁핍해지고 노후준비는 부실하게 되며 무엇보다 부모들이 선후, 시비에 대하여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 터널 비전 효과는 어떤 대상에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시야 밖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집단사고는 다른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속내를 표현하지 못하고, 대집단에 소속하기 위해 집단 속의 부조리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을 뭉개버리는 현상이다. 무엇보다도 시험중독은 무엇보다 선택된 상위 20%의 사람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열등감과 패배감에 빠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잘못된 공정과 정의 개념과 갑질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며 사회는 상호불신과 집단 우울을 앓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험인간들이 법조인과 의사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최우등의 성적을 받아 최상위 등급의 대학에 진학하고 고난도의 고시를 합격하여 생애 여러 단계의 시험과 등급 상향 단계를 거쳐, 시험에 익숙하고 시험 결과에 따른 엄청난 수혜와 보상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다. 법조인들은 자기 자리에서 최고 지위와 수입을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기가 되면 정치에 입문하여 권력을 차지한다. 국회에서 최대의 직역 대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코로나 비상사태에서 극도로 불안한 국민의 심리를 볼모로 잡고 반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의사들의 선민의식과 오만함도 결국 시험제도에서 나온 것이다. 당신은 의사협회 홍보물에 나온 다음 문제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1)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한 의사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우리 시험제도가 만든 의사집단의 적나라한 의식세계와 그들이 얼마나 시험에 체화되어있는지가 그 문제와 문장 구성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을 보충한다고 EBS 연계 출제 70%를 보장하는 나라, 대학입학 시험을 준비한다고 비행기도 멈추게 하는 나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나라에서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교수평기)의 일체화를 내세우고 구술, 논술, 퀴즈를 도입하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며, 수능시험에 서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등 시험제도를 이렇게 저렇게 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시험제도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방법을 찾아내는 사교육 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상류층의 적응력을 당해낼 사람은 없다. 교육학의 기본원리는 교육학의 책에서 있을 뿐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는다. 적자생존, 각자도생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규정되어 있는 교육에 대한 관념도 결국 교육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다. 결국 시험제도의 개혁도 한 줄 세우기가 아니라, 국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능력의 실현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의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진 집단이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회의 공공선을 돌아볼 수 있는 시민성을 갖출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에 의해서 바로 잡힐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시험이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다만 고통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간절한 기도는 소소昭蘇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나약한 인간의 턱도 없는 낭만주의적 바람에 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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